3. "여기 모르면 손해" 호갱 탈출을 위한 하노이 약국 성지(聖地)와 실전 쇼핑 가이드
하노이에서 약국 쇼핑을 마음먹었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구글 지도(Google Maps)에 별표를 찍는 것입니다. 무턱대고 아무 약국이나 들어갔다가는 현지인 가격의 두세 배를 부르는 소위 '외국인 프리미엄'의 희생양이 되기 십상이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처음 하노이에 왔을 때는 호안끼엠 호수 바로 앞, 목 좋은 곳에 위치한 약국에서 비판텐 하나를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은 가격에 사고 씁쓸한 웃음을 지었던 아픈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여행에서는 철저한 사전 조사와 현지 교민들의 조언을 바탕으로, 여행자가 믿고 갈 수 있는 검증된 약국 좌표들을 리스트업 했습니다. 여러분의 지갑을 지켜줄 이 정보는 가이드북에도 잘 나오지 않는, 발로 뛰어 얻은 귀중한 데이터입니다.
가장 먼저 소개할 곳은 하노이 약국 쇼핑의 끝판왕이라 불리는 하풀리코 약국 시장(Hapulico Medicenter)입니다. 이곳은 단순한 약국이 아니라 베트남 북부 최대의 의약품 도매 시장으로, 마치 한국의 동대문 시장을 방불케 하는 엄청난 규모와 인파를 자랑합니다. 숙소였던 하노이 라 시에스타 호텔에서 그랩(Grab)을 타고 약 20분 정도 이동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도착하는 순간 벌어지는 진풍경에 입이 떡 벌어지게 됩니다. 건물 전체가 약 냄새로 진동하고, 사람 키보다 높게 쌓인 약 상자 사이로 수레들이 쉴 새 없이 오가는 모습은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산업 현장을 보는 듯합니다. 이곳의 가장 큰 장점은 단연 압도적인 가격인데, 시내 일반 약국보다 최소 10%에서 많게는 30%까지 저렴하게 물건을 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풀리코는 도매상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낱개 구매보다는 대량 구매를 원하는 여행자에게 적합한 곳입니다. "Do you sell one piece?(한 개도 파나요?)"라고 물으면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젓는 상인들도 있지만, 1층 입구 쪽의 소매 약국들은 관광객에게도 친절하게 낱개를 판매합니다. 저는 이곳에서 선물용으로 돌릴 아티소 앰플과 스트렙실을 박스 단위로 구매했는데, 계산기를 두드릴 때마다 줄어드는 숫자를 보며 희열을 느꼈습니다. 다만, 시장 특유의 소음과 복잡함, 그리고 에어컨이 약해 후덥지근한 공기는 감수해야 할 부분입니다. 쾌적한 쇼핑보다는 '현지 도매 시장 탐방'이라는 모험심을 가지고 접근한다면, 하풀리코는 하노이 여행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이색적인 장소가 될 것입니다.
도매 시장까지 가는 것이 부담스러운 분들에게는 베트남의 올리브영이라 불리는 파마시티(Pharmacity) 체인을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하노이 시내를 걷다 보면 초록색 간판에 흰색 글씨로 깔끔하게 적힌 파마시티를 아주 쉽게 발견할 수 있는데, 이곳은 100% 정찰제로 운영되어 외국인도 바가지 쓸 걱정이 전혀 없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시원한 에어컨 바람과 함께 깔끔하게 정리된 진열대가 눈에 들어오며, 직원들도 기본적인 영어가 가능해 의사소통이 훨씬 수월합니다. 저는 주로 늦은 밤, 갑자기 필요한 상비약이나 소량의 기념품을 살 때 숙소 근처 파마시티를 이용했는데, 카드 결제도 가능하고 영수증까지 꼼꼼하게 챙겨주는 시스템에 큰 신뢰를 느꼈습니다.
파마시티와 쌍벽을 이루는 또 다른 믿을만한 체인점은 바로 파란색 간판의 롱 차우(Nha Thuoc Long Chau)입니다. 파마시티가 드럭스토어 느낌이라면 롱 차우는 조금 더 전문적인 약국 느낌이 강한데, 처방전이 필요한 전문 의약품이나 특정 성분의 약을 찾을 때 매우 유용합니다. 현지인들 사이에서도 "약은 롱 차우가 가장 저렴하고 종류가 많다"는 인식이 있을 정도로 평판이 좋은 편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한국에서는 구하기 힘든 고함량 비타민과 부모님 관절 영양제를 구매했는데, 약사가 태블릿 PC로 성분을 하나하나 보여주며 설명해 주는 전문적인 모습에 감동받았습니다. 올드쿼터 내에도 지점이 여러 군데 있으니, 길을 걷다 파란 간판이 보이면 주저 말고 들어가 가격 비교를 해보시는 것을 권합니다.
물론 체인점이 아닌 일반 로컬 약국(Nha Thuoc)들이 주는 특유의 정겨움과 흥정의 재미도 놓칠 수 없습니다. 특히 '항마 거리(Hang Ma)'나 '란옹 거리(Lan Ong)' 근처에는 전통 약재상과 현대식 약국이 공존하는 독특한 풍경이 펼쳐지는데, 이곳에서는 약사와의 기싸움(?)을 통해 가격을 깎는 묘미가 있습니다. 제가 들어간 한 작은 약국에서는 주인 할머니가 영어를 전혀 못 하셨지만, 손짓 발짓과 계산기를 통해 소통하며 결국 덤으로 마스크 팩 한 장을 받아내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이런 로컬 약국을 이용할 때는 반드시 구글 번역기에 베트남어로 약 이름을 적어가거나, 제품 사진을 미리 캡처해서 보여주는 것이 서로의 정신 건강에 이롭습니다.
약국 쇼핑 시 주의해야 할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유통기한(Date of Expiry) 확인입니다. 베트남어로는 'Han su dung' 또는 약자로 'HSD'라고 적혀 있는데, 간혹 저렴한 가격에 혹해 샀다가 유통기한이 한두 달밖에 남지 않은 재고 떨이 상품을 만나는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물건을 건네받자마자 그 자리에서 박스를 뒤집어 날짜부터 확인하는 습관을 들였는데, 한번은 유통기한이 지난 약을 발견하고 교환을 요청했던 아찔한 경험도 있습니다. 약사가 실수였는지 고의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Sorry"라며 새 제품을 꺼내주는 모습을 보며 역시 확인은 필수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내 몸에 들어가는 약인 만큼,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신중함이 필요합니다.
결제 수단에 대한 팁도 빼놓을 수 없는데, 대형 체인인 파마시티나 롱 차우를 제외한 대부분의 로컬 약국은 현금(Cash)만을 선호합니다. 카드를 내밀면 기계가 고장 났다거나 수수료를 추가로 요구하는 경우가 다반사니, 약국 쇼핑을 나갈 때는 넉넉한 베트남 동(VND)을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특히 50만 동 같은 고액권보다는 10만 동, 5만 동짜리 소액권을 섞어서 가져가면 거스름돈 문제로 실랑이를 벌일 일도 줄어듭니다. 저는 지갑 속에 약국 쇼핑 전용 예산을 따로 빼두어 과소비를 막고, 계산할 때도 당황하지 않고 척척 지불하는 스마트한 여행자의 모습을 연출하곤 했습니다.
또한, 구글 지도의 리뷰 기능을 적극 활용하는 것도 실패 확률을 줄이는 좋은 방법입니다. 한국인 관광객들이 남긴 "여기 사장님 친절해요", "비판텐 재고 많아요", "가격 눈탱이 없어요" 같은 생생한 후기들은 그 어떤 가이드북보다 정확하고 강력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저도 방문 전 리뷰를 꼼꼼히 읽어보고 평점이 4.0 이상인 곳만 골라 다녔는데, 그 덕분인지 이번 여행에서는 단 한 번의 불쾌한 경험도 없이 만족스러운 쇼핑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정보의 바다에서 나에게 필요한 진짜 정보를 건져내는 능력, 이것이야말로 현대 여행자가 갖춰야 할 필수 스킬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약국 쇼핑을 마친 후에는 꼭 영수증을 챙겨서 구매 목록과 대조해 보는 시간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아주 드물게 계산 실수가 있거나, 내가 고르지 않은 물건이 슬쩍 끼어 있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숙소에 돌아와 침대 위에 약들을 늘어놓고 영수증을 맞춰보며 "아, 이건 정말 싸게 잘 샀다"라며 뿌듯해하는 시간은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입니다. 오늘 소개한 하풀리코, 파마시티, 롱 차우, 그리고 로컬 약국들의 특징을 잘 기억해 두셨다가, 여러분의 여행 스타일과 동선에 맞는 최적의 장소를 선택하시길 바랍니다.
이제 양손 가득 쇼핑도 마쳤고, 지갑은 가벼워졌지만 마음만은 풍성해졌습니다. 하지만 여행의 끝은 언제나 짐 싸기라는 난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과연 이 많은 약을 한국으로 가져갈 때 세관 문제는 없을지, 그리고 효과적인 짐 싸기 노하우는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다음 챕터에서는 쇼핑한 의약품을 안전하게 한국까지 가져가는 방법과, 여행을 마무리하며 느낀 하노이에 대한 총평을 나누며 이 긴 여정을 정리해 보려 합니다. 캐리어의 빈 공간을 찾아 헤매는 저의 고군분투기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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